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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展(1)

작은둥지 2007. 2. 21. 14:10

 

 르네 마그리트(1898~1967)

 

1898년 벨기에에서 출생한 마그리트는 1916년부터 브뤼셀의 아카데미 데 보자르(Academi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하면서 미술공부를 시작하였고, 이후 10여 년간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제작한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경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창조해 나가기 시작했고, 1927년부터 3년 간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파리에 머물기도 했다.


1925년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인 앙드레 브르통의「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결성된 초현실주의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사용해 거의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했던 것과 달리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벨, 담배 파이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 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거나, 어떤 오브제를 전혀 엉뚱한 환경에 위치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독수리를 돌의 재질과 같이 변형시키는 식으로 사물이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를 바꾸는 '변경', 성채와 나무 밑 둥을 결합하는 식의 '사물의 잡종화',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1950년대에 들어서 마그리트는 기존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양식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vache) 시기의 작업이 그것이다. 인상주의 작가, 특히 르누아르의 영향을 반영하는 주제와 화려한 색채, 표현적인 붓 터치로 특징지어 지는 마그리트의 인상주의 시기 작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된다. 바슈 시기는 1957년 단 2주에 걸친 예외적인 실험으로 프랑스의 야수주의에 대한 영향과 동시에 풍자를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를 제외하면 마그리트의 작업은 193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주제와 이미지(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단어의 사용, 인간의 조건, 중절모를 쓴 남자)가 평생의 작업에 걸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뿐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로 대표되는 말과 사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의 2차원 공간 간의 모순을 다룬 인간의 조건 등 마그리트의 예술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마그리트의 면모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보다 경도되었던 것에 비해 마그리트의 작품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가진다. 실제로 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마그리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작가였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며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철학적인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고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비틀즈의 음악과 애플 레코드사의 사과모양 로고), 영화(매트릭스 시리즈), 문학(김영하의 <빛의 제국>), 교육(대학 입시 논술 고사 문제로 출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마그리트를 초현실주의의 거장에서 더 나아가 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칭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마그리트의 대표적인 회화 작품 뿐 아니라 2006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마이욜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마그리트의 드로잉전과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파리의 유럽 사진 미술관에서 열렸던 마그리트의 사진전에 소개되었던 사진 및 영상작업 (마그리트가 직접 찍은 사진과 단편 영화) 등이 대부분 소개되어, 마그리트의 삶과 예술을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는 완벽한 지적 능력을 요하는 경향이 있어서 미술가의 미적, 회화적 관심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자의 탐구의 대상이다.

무미건조하고 사실적인 그의 양식은 종종 비회화적이고 아카데믹하다고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명확한 사고를 보여 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생각을 눈에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 사고는 관념이 아닌 이미지와 함께 나간다.

이러한 회화의 의미는 기존의 어떠한 문학적인 설명이나 해석으로도 설명되지 않지만, 우리의 상식적인 믿음을 끊임없이 연구, 분석하고 존재의 모순을 조정하기 위하여 애쓴 철학자의 기질을 나타낸다.'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나는 체념, 인내, 직업적 영웅주의, 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나는 또한 장식미술, 민속학, 광고, 발표하는 목소리, 공기 역학, 보이스카우트, 방충제 냄새, 순간의 사건, 술 취한 사람들도 싫어한다.
   
나는 냉소적인 유머와 주근깨, 여자들의 긴 머리와 무릎, 자유롭게 뛰노는 어린이들의 웃음, 골목을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들을 좋아한다.
   
어떤 초상화는 그의 모델을 닮으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모델이 그 초상화와 닮기를 바란다.
   
나는 고대 혹은 현대 미술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나에게 있어 회화는 색채를 병렬하는 예술이며, 이런 방식을 통해 색채는 실제적인 면을 상실하고 대신 영감을 받은 사유를 드러내게 한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은 시의 신비한 현실에 집착하기 위한 것이며 전통에 매우 충실한 생각에 속한다.
   
초현실주의는 우리가 꿈을 꾸면서 가졌던 것과 유사한 자유를 실제 삶에서도 요구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제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 들게 한다.
   
나는 영화예술의 기초를 이해하고 있지만  회화를 통해서만 나의 생각들을 표현 할 수 있다.
   
말은 이미지가 보여줄 수 있는 것,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언어가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이미지가 보여줄 수 없다. 그러나 그려진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과 말로써 표현되어지는 것은 같은 것이다.
   
나무 테이블의 다리들이 숲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들에게 부여된 순수한 존재를 잃어  버린 것이다.
   
나는 우리의 멋진 말들의 목에 매달린 쇠 방울들이 구렁텅이의 가에 있는 위험한 식물처럼 자라난다고 믿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여인의 나체를 하늘로 변화시키는 것은 마술의 행위이다.
   
구와 집은 나무에게 불가사의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커튼은 쓸모없는 것을 감춘다
 
<붉은 모델>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발과 가죽구두의 결합이 현실에서 기이한 관습을 드러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

 



 

 

우리 시대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준 작가이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숨겨져 있는 환상을 우리에게 찾아준 작가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이자 시인인 마그리트를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교육적인'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그리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의 작품은 아무런 의미도 감추고 있지 않은 가시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조형세계는 인간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기성과 현실의 경직된 질서 체계를 정확하고 세밀한 이미지를 통해 회화적으로 꼬집고 뒤집는 기묘하고도 야릇한, 비평적인 예술창작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마그리트는 광적인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시도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냉정한 이성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화, 과슈, 드로잉을 포함하는 회화 120여점과 친필 서신, 사진 등 총 270 여점에 달하는 마그리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희귀 영상자료들과 함께 소개되는 이번 한국에서의 회고전은 마그리트가 그의 작품에서 집요하게 차용인용해온 사과, 돌, 새, 중절모, 벨, 담배 파이프, 여인의 특정 신체 부위 등과 함께 우리에게 몇몇 주요 회화작품 위주로 알려져 있는 마그리트와 그의 작품세계를 종합적,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특히 함께 소개되는 영상작업의 경우, 그가 10대 때에 탐닉했던 에드거 알란 포나 스티븐슨 원작의 판타지영화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지난 3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마련된 국내 최초의 르네마그리트전은 브뤼셀의 벨기에 왕립미술관, 마그리트 재단은 물론, 뉴욕, 런던 등 해외 유명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마그리트의 걸작과 전 세계 저명 컬렉터들의 비장품을 대거 포함하는 진정한 마그리트 컬렉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06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마이욜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마그리트의 드로잉전과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파리의 유럽 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마그리트의 사진전에 소개되었던 작품들이 대부분 출품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전시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이 2007년 가을 왕립미술관내에 개관하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의 완공 이전에 이례적으로 해외에 마그리트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전용 미술관 개관 이후에는 아마도 접하기 힘들지 모를 마그리트의 마지막 대규모 해외 나들이가 될 것입니다.

 

 

아마 미술시간에 누구나 한번은 종이에 물감을 바른 후, 접었다가 펴게 되면 이미지가 중첩되거나 두배로 늘어나 처음에 내가 그렸던 것과는 아주 다른 그림이 되곤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것이 데칼코마니아(decalcomania)라고 하는 건데, 바로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용한 데칼코마니아의 가장 쉽고 흔한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우연적인 이미지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 이미지에서 작가는 전혀 새로운 형상을 생각해 내죠.

또 프로타주(frottage)라고 하는 문지르기도 해보았을 겁니다. 동전이나 나뭇잎 같은 질감이 있는 거친 표면에 종이를 대고 크레파스나 연필로 문지르면 종이에 나뭇잎의 줄기나 동전의 문양이 베껴져 나오는 기법의 그림을 말합니다. 또다른 초현실주의자 에른스트는 이런 방법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이렇게 초현실주의는 ‘우연히 발생하는 이미지'를 강조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초현실주의는 지금으로부터 83년 전인 1924년,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라는 사람이 <초현실주의 선언>이라는 발표와 함께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앙드레 브르통은 선언문에서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강조했는데, 이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환상의 세계를 강조한 것입니다.

 

초현실주의의 목표는 인간성의 진정한 근원인 환상, 꿈, 상상 등을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초현실주의자들은 미술이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인 문화양식에 대항하도록 하였으며,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광기, 꿈, 환상, 욕정, 콤플렉스 등을 해방함으로써 정신의 완전한 자유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프랑스에서 발원한 초현실주의 일원들의 영향을 받긴 하였지만, 동시대 다른 화가들의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차별화된 작품 스타일을 보여준 독특한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작품은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두드려져 초현실주의 계보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지닌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조그만 현실을 다르게 보아도 현실은 신비롭게 다가올 수 있다.”라는 마그리트의 말처럼 그는 작품 속에서 생활 속 사물을 다르게 배치하거나 중첩시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입니다.

21세기는 여성적 감성이 우월할 시대, 상상력이 돈이 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이러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일상의 사물, 우리가 흔히 인정해버리는 언어, 누구나 그렇게 믿고 있는 상식이나 철학 등을 다시 한번 고민하고 회의한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매우 친숙하면서도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현대문화의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마그리트의 이러한 상상력을 좋아했고, 그것을 응용했습니다.

음악에서 현대 락음악의 창조자인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마그리트 작품 속  ‘사과'를 응용하여 ‘Apple Records'사라는 음반회사를 설립했고, 락그룹 롤링스톤즈도 마그리트의 작품을 응용하여 레코트판을 디자인했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끈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이 여러 명 복제된 장면은 마그리트의 대표작 <겨울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진중권의 베스트셀러 <미학오딧세이>가 마그리트의 작품과 그의 작품 철학을 주로 인용하고 있고,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은 밤이면서도 낮인 마그리트의 초현실적인 <빛의 제국>의 작품을 실제로 인용한 소설입니다. 2003년, 2004년 연세대 논술고사에서도 마그리트의 작품이 출제되어 단순한 암기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이렇듯 마그리트는 현대문화 전반에서 상상력이 가장 돋보이는 작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마그리트의 “상식에 대한 도전”은 문화가 중심이 되는 21세기에 와서 더욱 돋보이는 정신이라 할 것입니다. ‘상식을 뒤짚어 보는 지혜와 용기', ‘매사에 질문을 던지는 자세', 이번 전시를 통해 상상력의 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마그리트가 직접 찍은 사진과 그의 친구들이 찍은 마그리트의 사진들이 대거 소개됩니다.
이 사진 속에는 마그리트의 아내 조제트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의 친구들이 마그리트의 그림
속 한 장면을 유쾌하게 연출해내고 있는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1925년 경부터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화면에 도입해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시적인 이미지를 창조해 내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개척하게 됩니다.

 



   

마그리트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이전에는 가구와 벽지 디자이너로 생계를 유지했고, 화가로 유명해 진 이후에도 종종 광고와 장식미술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에 대한 탐구에서 잠시 벗어나 인상주의의 화려한 색채와 표현적인 붓 터치를 도입한 작품들을 제작합니다. 이 시기의 작업은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역설적인 저항으로 해석됩니다.

 



1948년 마그리트는 야수주의의 화려한 색채와 거친 표현성을 도입해 야수주의를 풍자하는 역설적인 작업을 선보입니다. 불어로 암소를 뜻하는 바슈는 포비즘(야수주의)의 포브(야수)를 패러디 한 것입니다.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 이후에 마그리트는 다시 1930년대의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복귀합니다. 마그리트는 그 이유를 아내인 조제트가 이전의 화풍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1930년대의 화풍으로 복귀하면서 그 당시에 그려진 작품들을 약간씩 변형시키거나 유화를 과슈로 다시 그리는 식으로 스스로 자신의 회화를 복제하기도 합니다.

 



마그리트는 언제나 화가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말년인 1960년대의 작품에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마그리트의 철학적 회화관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평소 영화 애호가였던 마그리트는 1956년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그의 영화들은 집과 화실을 배경으로 아내인 조제트와 친구들의 유쾌한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무성영화들입니다.

 


   

1956년 마그리트는 미국의 유명 사진 작가 듀안 마이클에게 그의 일상과 작업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개방합니다. 마이클의 사진은 실재와 상상의 세계 사이의 교차점을 탐구한다는 면에서 마그리트의 회화와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어제 조간신문에 나온 낱말이 생각이 나는군요.

 

眞光不輝 참된 것은 빛나지 않는다는...

 

말인 즉은 요즘 곳곳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어 이를 구경하고자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말과 문화의 폭이 넓어져서는 이전에 즐길 수 없었던 작품의 세계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말과 더불어 인사동을 비롯한 우리나라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있는 곳엔 어느 땐가는 혼자 감상을 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아쉬움 섞인 ...

하지만 언젠가는 그분들의 그림도 진가를 알아 줄 날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더불어 진광불휘의 뜻을 말씀하신 것을 읽었지요.

 

불과 얼마전에 저도 아이들 방학숙제라 해서 지인의 딸과 조카들을 데리고 덕수궁 서울 시립미술관엘 들렀드랬지요.

超현실주의 거장이란 벨기에 출신 '르네 마그리뜨 (1898~1967)展'을 감상하고 왔답니다.

전혀 조예가 없는 나인지라 감상하면서도 깊이있는 무엇은 감지할 수 없음에도 역시 거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그분의 사고에 잠시 젖어들던 시간을 갖어보았답니다.

새롭게 그분의 작품을 이곳 저곳에서 찾아보는 움직임엔 어느사이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숙해 진 느낌을 갖어보면서 정리를 해 보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