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허영의 시장’ | |||
[문화일보 2006-08-21 15:05] | |||
‘허영의 시장(The Vanity Fair)’은 찰스 디킨스와 함께 19세기 영국문학을 대표한다는 윌리엄 새커리(William M. Thackeray)가 1847년에 쓴 소설이다. 결혼을 잘 하여 일생을 편하게 살려는 두 여자의 인생행로를 그린 세태 고발 소설이자 영국 상류사회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명작이다. 소설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은 남 편을 독살하고 그 재산으로 귀부인 행세를 하기도 한다.
이 소설 제목 ‘허영의 시장’은 17세기 영국 소설가 존 버니언( John Bunyan)의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s Progress)’ 에서 따 왔다. ‘천로역정’은 버니언이 1678년에 쓴 종교적 우 의(寓意)소설이다. 우의소설은 다른 사물에 빗대어 은연중 어떤 의미를 넌지시 비춘 소설이다. 순례길에 나선 이 소설의 주인공 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 천신만고 끝에 ‘하늘의 도시(천성 )’에 도달하는데 중간에 ‘허영의 시장‘을 지나게 된다.
‘허영의 시장’에서는 온갖 것을 사고 판다. 소설에 등장한 ‘ 상품’을 보면, 주택, 토지, 지위, 명예, 승진, 직위, 나라, 왕 국, 욕망, 쾌락 등이 있다. 금은보화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내, 남편, 자녀, 주인·하인, 생명, 피, 육체와 영혼까지 상품으로 등장한다. 또 허영의 시장에서 득실대는 인간들 가운데는 요술사 , 협잡꾼, 도박꾼, 놈팡이, 바보들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그 시절 에 이미 게임(games), 플레이(plays)까지 언급되고 있다.
한국판 ‘허영의 시장’에도 없는 게 없다. 장신구류에서 의약품 까지 만물 백화점이다. 최근엔 대낮에도 성인 오락실에 틀어박혀 공돈을 벌 허영심으로 게임오락을 하고 있다. 그런 전자 기계를 만들어 판 사람, 그런 영업을 허가한 사람들도 모두 ‘허영의 시장’의 주인공들이다. 가짜명품을 찾는 과시(誇示)소비욕을 탓 하기에도 지친 지금 권력형 부정의 냄새까지 풍기는 도박 열풍이 부는 이곳은 진정 ‘허영의 시장’이 아닐 수 없다.
[[김성호 /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