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도라 던컨(1878~1927)은 모던 댄스의 개척자로 불리운다. 187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15살 때에는 뉴욕에서 델리의 무대에 출연했다. 그후 1~2년간 자신만의 무용을 했으며 관객을 사로잡아 상당한 재산을 모으며 유럽과 북미양 대륙에 이름을 떨쳤다. 이사도라는 영혼의 춤을 추었고 춤을 종교와 동격으로 두면서 춤을 통한 종교의 무용을 주장했다. 그녀는 모든 속박을 깨뜨리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준 화려한 실례로서 대중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뒤흔들어 놓았다. 그녀를 미국에서 발생한 이예술의창시자로 평가하는 것은 그녀의 뒤를 이어 그녀의 독창적인 움직임의 양식을 흉내내거나 발전시킨 루스, 세인트,, 데니스,도리스,헌프리,마사 그라함 등의 거물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클래식 발레의 규범과 인공적인양식에 반대해서 무용을 인간의 강렬한 표현형태로 발전시킨데 있는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혐오가 사랑으로 바뀌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전통에 얽매인 채 기계적인 동작만을 답습한다며 발레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의 몸과 영혼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었던 여자. 토슈즈 없이 춤을 춰 ` 맨발의 이사도라 '라 불리웠던 현대 무용의 개척자. 이사도라 던컨. 모든 편견과 구속으로 부터의 자유를 외쳐댔다 하더라도 그녀 역시 인간이기에 까닭 없이 싫어지는 사람이 있었나보다. 이사도라가 영국에 체류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춤에 필요한 피아노 반주자를 섭외한 끝에 그녀는 한 피아니스트를 소개받았다. 그런데 이 사내는 아주 볼품없는 체격에 머리가 큰 체형을 갖고 있어 이사도라는 처음에 그를 볼 때마다 `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 고통을 느낄 정도 였다고 한다. 그녀를 숭배한다는 그 피아니스트의 눈물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급기야는 칸막이까지 동원해 춤 연습을 할 지경이었으니... 그러던 어느 날 마지못해 그와 함께 동승하게 된 차 안에서,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리던 차는 이내 크게 한 번 덜컹거렸고 그녀는 어느새 반주자의 품에 안겨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와 눈길이 마주친 이사도라는 너무나 뜻밖에도 전기에 감전된 듯한 열기를 느꼈단다. 급기야 그 감정은 그토록 꺼리던 칸막이 너머의 연주자석으로 그녀를 이끌어 열렬한 사랑을 나누게 하였으니 말이다. 때로, 사랑은 아주 찰나의 순간을 빌어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그 순간 내 마음의 좁은 눈구멍으로 인해 보이지 않던 상대의 존재는 어느덧 자신의 참 모습을 되찾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내 편견어린 시선에 가리워진 그 사람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는 일. 그것이 또한 사랑이라는 명제에 대한 크나큰 한 답변이 아닐까. .. Isadora (맨발의 이사도라) / Paul Mauria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