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향기/주님곁에서

[스크랩] ※들어가는 말

작은둥지 2014. 2. 24. 11:26

들어가는 말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다는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목사님의 말씀처럼 많은 기도는 그만큼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기도가 바로 사귐이라면 인격적인 만남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요,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귐에 전력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음의 방향이 하나님 중심을 벗어 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믿음 즉, 비인격적인 믿음(성서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자기중심적인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의 원하심은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요구만을 하나님 앞에 나열하고 기도의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비 기독교인들에게 반 기독교적 정서만을 준 것이 한국기독교의 현주소입니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Praying Church)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무지 때문에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기복적인 기도에 많이 머물러 있습니다. 또한, 앞에서 말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다는 기도의 본질에 대한 왜곡된 이해로 은사주의나 신비주의적 체험의 기도를 추구함으로 우리의 신앙의 초점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무너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라는 이 놀라운 자리를 그리스도께서 주실 수 있는 선물들만 구하는 자리로 바꾸어 버리므로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능력 있는 신앙인이 아닌 신앙과 인격의 균형이 깨어져버린 신자들이 양산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한 마디로 기독교가 세상에 의해 손가락질 당하는 근본 원인 속에 주님께서 의도하시고 원하셨던 기도에 대한 몰이해가 그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감부터 비인격적인 자기의 요구들만 채우는 욕심꾸러기 같은 모습이라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관계를 맺는 비인격적인 자로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할 때 기도로 시작하셨고 공생애를 마감할 때도 기도로 마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을 찾으신 이유가 기도하기위함이었다고 누가복음 51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삶과 기도는 직결되어 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할 때도 기도하시는 예수님 위에 임하셨다고 기록되었고, 열두 제자들을 세우실 때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었고, 변화산상에 오르시는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함이라고 기록되었고,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가 기도의 장소였음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하기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것은 예수님의 모든 삶의 힘이 기도, 아버지와의 사귐에 있기에 그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처럼 우리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로 서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바른 자세부터 우리의 선생님이신 그리스도께 배워야 할 것입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바로 배우기 위해 이 땅에서 기도의 삶을 사셨고 친히 본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보좌에서 기도의 삶을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배우고 추구하여 나아갈 기도와 그 속에 담긴 주님의 가르침을 그리스도와의 연합(하나됨)의 관점에서 짚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목사님은 예수님 이전의 그 누구도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아들이신 그리스도,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여 아버지를 드러낼 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기도의 비밀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R.A.토레이(R.A. Torrey) 박사는 우리의 모든 기도 중에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며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참포도 나무와 가지와의 연합을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나아감 자체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기도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사실 때 드렸던 기도의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을 그리스도와의 연합, 즉 하나 됨에서 짚어 보는 것은 참포도 나무와 가지, 머리와 지체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될 기도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해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소책자를 읽는 모든 분들이 기도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의 영적 실체 안으로 들어가는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주연합교회
글쓴이 : 오찬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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