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문지기/묵상(강영기목사님)

오늘의 소식(일곱째 날-마지막) 1/29

작은둥지 2010. 1. 29. 18:40

오늘의 소식 (일곱째 날)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요나서 말씀을 잠시 되새겨 보면서

어찌하여 중심에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요나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삶으로 전락하였는지를 찾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요나는 그가 탄 배가 폭풍 속에서 위기를 만날 그때에

“이 일이 나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물에 던지라.” 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올곧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가라고 알 수 있습니다.

“정말 나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물에 던지소서.”

회피하지 않는 올바른 마음을 갖은 곧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람으로 쓰시고자 하셨는가 봅니다.


또 한편 요나서 2장 말씀에서

그가 물속에 떨어져 고기 뱃속에 들어갔을 때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대감 있는 마음으로 믿음을 두면서

내 하나님을 앙망하는 그 신앙의 자세는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나 때문입니다. 나를 던져 버리소서.”

그리고 그 고기 뱃속에서 참 마음으로 회개하고

내 하나님을 향해서 기대감과 또 소망을 갖는 이 올바른 신앙은

정말 우리가 내어 버릴 것이 없는 아름다운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나서의 내용은

우리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 주어져 온 일이기 때문에

의심하기 쉬울지 몰라도,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란

마태복음 12장 말씀만 본다면

우리에게 필요 없는 의심은 저 구름처럼 다 날아가 버리고 말 줄 압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요나가

요나서 1장에서의 모습이나 요나서 4장에서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요나서 1장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습니다.

아담과 여인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듯이 요나도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알기 전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맡기고자 할 만큼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아온 자인데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습니다.

피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는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도리어 피하여 다시스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어긋난 길로 가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여주십니다.


그리고 요나서 4장 말씀에는 하나님을 피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하고 대적하는 자세로 변한 모습입니다.

요나서 2장에서 그리고 3장에서 요나가 경험한 것만 보아도

이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요나서 4장은 사실인 것입니다.

1장에서는 피하였고 4장에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대적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곳에서 정말 깊이 있게 주목해야 될 내용이 있습니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 삼일 동안 있었던 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암시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요나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 우리도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호세아 말씀에 나오는 고멜이 마침내 올바른 마음으로 볼 때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란 말씀처럼

우리를 찢으시고 우리를 치셔야 만이

하나님 앞에 제대로 된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것을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걸어왔던 자가 자기에게만 속한다면

언제나 하나님을 피하는 길로 가고

하나님이 뜻하지 않는 길로 가고자 한다는 점을

우리가 주목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했던 자라 할지라도

내가 나 자신에 속하여 버리고 만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대적하는 그런 자로 바뀌어 지고야 만다는 뜻입니다.


사울 왕.

그는 얼마나 아름다웠으며

그가 왕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엄청난 경험을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생생하게 아는 자였습니다.

요나가 “나 때문이요.”라고 말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안다는 뜻인 줄 압니다.

그가 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안다는 뜻인 줄 압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기에게 속하여 육신 속에만 머문다면

사울 왕이 하나님을 피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를 대적하여 죽이고자 하는 하나님의 원수 편에 섰듯이

우리도 얼마든지 이 모습으로 전락하고야 만다는 교훈을 깊이 있게 새기는 것은

참으로 필요할 줄 압니다.


오늘도 우리가 참다운 주님 되신 주님을 향해서 어느 길까지 왔을지라도

새롭게 나를 벗어버리고 주님께 속하는,

사도 바울 선생님이 이제 갓 처음 예수님 믿을 때가 아니라

그가 사도로 보냄 받은 고린도 교회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 하신 고린도 전서 2장 말씀처럼 

나를 벗어버림과 더불어 내 주님께 속함만을,

나의 주님만을 사랑하므로 내 주님의 마음만을 알아가고자 마음 쓴 흔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강한 내용인 줄 압니다.


어제 내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길뿐더러

오늘 새롭게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나를 벗어버리고

그의 부활하심에 함께 연합하여 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나의 주님과 함께 길가고자 하는 빌립보서 3장의 마음이 된다면

햇빛 좀 내리 쬔다하여 불평할 리 없습니다.

 

내 주님께 속한 그 뜨거운 마음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라고 한다면

오늘의 십자가 짊어지면서도

내 주님 사랑하는 불붙는 마음으로 주님께 온 관심두면서 길가는

그런 아름다운 주님의 사람이 능히 될 수 있는 줄 압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에게 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고

새롭게 새롭게 내 주님께 속하고

아니 날마다 날마다 나를 벗어버리고

내 주님과 연합한 마음으로 오늘의 십자가 짊어지며

내 주님의 돕는 이로 섬기고자 하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예수님의 참 좋은 군사로

예수님의 참 좋은 종으로

예수님의 돕는 이로

여러분의 가슴속에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꽉 차있는

오히려 그 고난 속에 나의 주님을 향한 진주가 형성되는 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밧모섬의 요한처럼

오늘도 불붙는 사랑 속에서 

주님을 향한 강한 마음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줄 압니다.


감옥 속에서도

기쁨 가득한 마음과

만족하는 마음과

주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벅찼던 빌립보서의 사도 바울 선생님처럼

우리 한분 한분이 내 주님을 향하여

이 불붙는 마음속에

오늘의 고난이 주님을 향한 더 큰 경배가 되고

더 큰 뜨거운 마음이 되는 그런 좋은 길로 여기면서

나의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시는 한 분 한 분 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하십시오.

1. 29.(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