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문지기/묵상(강영기목사님)

오늘의 소식(다섯째 날) 1/26

작은둥지 2010. 1. 26. 22:25

 오늘의 소식 (다섯 번째)


마태복음 20장에서 우리 예수님은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과 오후 다섯 시에 포도원에 들어와서

한 시간 일한 사람에 관한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 가운데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사람도 있다.”는

마태복음 20장 16절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충격적으로 들려옵니다.

이곳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다.” 란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사랑 밖에 있던 자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라도

참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음을 말씀하여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과 저의 마음이

내 주님 향하여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를 헤아려 보는 것은

대단히 귀중합니다.


처음 된 자.

우리가 적절하게 표현하다보면

신앙 밖에 있었던 문제를 주님께서 가리키고 계신 것은 아닌 줄 압니다.

신앙 안에 있었던 사람.

이를테면 사무엘하서 1장에서 다윗이 가졌던 신앙의 중심 자세는

이 땅의 그 누구보다도 주님께 마음이 가까운 처음 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서 맨 마지막장인 24장에서의 다윗은

주님의 손 밖에 있는, 주님과 마음이 정말 먼 다윗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표현입니까?

사무엘하서 1장의 다윗이 하나님 나라 밖의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처음 된 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서 24장에서 그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보다도

하나님께 마음이 훨씬 더 먼 사람이었습니다.

나중 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가 훨씬 더 하나님께 마음이 가깝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과 경고가 되는 것은

정말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 밖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오고 난 이후의 우리 생활이

이러해서는 아니된다란 뜻인 줄 압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우리 예수님 말씀을 인용하면 처음 된 자들의 문제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마음에 자기의 수고한 것을 돌아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짐작해 볼 때 아침 일찍부터 온 이들이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들이 자기들과 똑같이 먼저 받았음을 알았을 때,

처음 온 이 사람들이 정말 기뻐하면서

일자리 없었던 그 사람이 이렇게 늦게 와서

정말 그 주인님의 사랑 때문에 필요한 것을 다 가지고 가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한없이 기뻐하는 마음을 본다면,

그리고 자기에게 들려진 것이 한 데나리온이어서 그들과 같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도 이렇게 넉넉한 것이 있고 저들에게도 주어지므로

넘치는 마음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고 성숙한

좋은 마음 자세인가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세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불평과 원망이 잘못되었다고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평과 원망을 조금도 용납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할 것이 못 되냐?

 너희와 약속한 것은 내가 지켰지 않느냐?”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그들에게 대하여 주셨습니다.

다만 그들과 하나님과의 마음은 더욱더 어려워져버리고

먼 마음이 되고야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정말 깊이 있게 되새겨 볼 값진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지나온 길에 관해서 되새겨 볼 때에

하나님께서 무엇에 중점을 두시는가를 알아간다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한 일, 나에게 있었던 이런저런 것들을 마음에 뒤돌아보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불행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어느덧 광야 길을 걸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름대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괜찮아 보였던 지도자급에 속했던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던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안타까운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 관한 것을 너무 많이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걸음걸음이 거짓된 걸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지나온 걸음에 대해 되새겨 볼 값진 것은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는 렘 2장 말씀처럼, 주님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감사 가득한 마음과

내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었던 그 일에 관해 감격하며 경배하는 마음이라면,

우리의 마음이 주님 향해서 훨씬 더 가까워질 줄 압니다.

이것이 아닌 나머지 것을 되새겨 보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불행은 훨씬 더 클 것 같습니다.


너희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능력의 반석을 어찌하여 마음에 두지 않느냐고 하시는 이사야 17장 10절 말씀처럼, 

만약 우리 마음에 우리 주님을 더 가깝게 모시지 아니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감사와 경배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을 놓쳐 버린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마음에 붙드는 것은 아무 쓸데없는 일일 것 같습니다.


애굽에서 나왔던 자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출애굽기 마지막 장인 40장에 왔을 때 어떤 사람이 되어 있나요?

그들은 주님을 예배하는 회막에 속한 그런 마음 자세이며

그들 가운데 영광으로 다가오신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내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내 하나님과 함께 머물고

내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는 동행하는 이 자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주님을, 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마음이란 뜻인 줄 압니다.


레위기의 마지막 장은 어떤 모습인가요?

마지막 장인 27장에서도

참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자, 자기를 드린 자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역사한 의미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민수기 맨 마지막 장인 36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리켜 말씀해 주고 계시나요?

내 주님께 속하여 주님 주시는 은혜의 영역에서 내 삶을 벗어나지 않고자 하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말씀하여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결같이 주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강하게 붙들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길을 걸어오면서 주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더 뜨겁게 굳혀져서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하여 더 가깝게 다가서는 마음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도 바울선생님이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에 성실된 마음으로 주님을 좇아왔을 때

“내가 고생 많이 했다. 내가 역사 많이 했다.” 라고 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이제 주님께 돌아온 이들을 사랑으로 더 돌아보고

그들을 위하여 더 간구하여 주고

예수님의 심장을 품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서 힘써가는 마음이었습니다.

나의 주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선 마음으로

오늘 주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며 서 있는 것이

내 주님께 합한 가장 아름다운 자세인 줄 압니다.


빌립보서의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된 자는

지나온 역사가 아무리 좋고 하나님의 축복됨이 아무리 많아도

거기에 있지 아니하고 오늘 주님께 사로잡히고자 힘써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오늘 주님의 그 뜻을 좇고자

마음 쓰고 있는 모습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귀중한 마음 자세라고 말씀할 수 있겠습니다.


살아계신 내 주님께 속하여서 지나온 걸음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묶어지고

주님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묶어져서

오늘 내 주님께 사로잡히기를 구하며

지나온 것에 대한 총 결론은

내 주님 더욱 사랑하며, 내 주님 마음 더욱 기쁘게 섬기고 싶은 이 마음만 가지고

오늘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서 있는 우리라고 한다면,

결코 결코 뒤에 있다는,

결코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이런 마음보다는

주님을 향하여 참으로 돕는 이로 예수님 한분께 더 가까운 마음으로 다가서서

오늘 주님 곁에 서서 주님의 기쁨 되는 이로 달려가는 것이 가능할 줄 압니다.


디모데 후서는 이런 의미에서 귀중합니다.

사도 바울선생님이 그의 마지막 보낸 서신입니다만

얼마나 주님을 향한 마음이 철저하고, 얼마나 주님을 향한 마음이 온전하고

얼마나 주님을 위해서 오늘의 고난 속에서도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시는지 ⋯

이 철저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언제나 주님을 향하여 올바른 마음으로 달려온 주님의 사람의 길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돌아볼 때 기억할 것 없습니다.

지나온 걸음이 오늘 내 주님 한분께 집착되는 우리가 된다면

가장 좋은 걸음인 것 같습니다.

내 주님을 유일한 친구, 유일한 내 사랑으로 붙들고

살든지 죽든지 내 주님을 존귀케 하고 싶은 강한 마음으로 다가서지 아니하면

우리의 신앙은 주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걸어온 걸음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압니다.


천국 가는 길에서

마음이 올바른 자, 마음이 곧은 자, 마음이 참으로 순수한 자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주님께 합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성장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참된 신앙길이

예수님을 더 가까이 사랑하고

주님의 사람으로 더 철저하게 헌신하고

내 주님을 위하여 불붙는 뜨거운 마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달려간다면,

언제나 언제나 주님께 기쁨이 되는

언제나 주님께 처음 된 자로 길가는 여러분이 될 수 있을 줄 압니다.

그러시기를 축원합니다.

1. 26(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