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자(5.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5.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고린도후서 8장과 9장 말씀을 이어서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7장 말씀은 주님과 멀어져 있는 고린도 교회가 겨우 회개하여 나의 주님께로 다가오는 모습이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헤아릴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뒤집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머나요?
나의 주님께 속함이 철저하지 못하나요?
헤아려 볼 것이 없습니다.
도리어 회개할 것만 남을 줄 압니다.
이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닌 줄 압니다.
고린도후서 8장 말씀에서 마게도냐 성도들이 극한 가난이 있지만, 그들은 참으로 극한 가난과 환난을 이기었다는 정도가 아니고 예루살렘 성도를 위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큰 기쁨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사랑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 없는 그들 가운데서도 섬김할 수 있는 축복된 열매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근거가 어디 있나요?
주어진 환경이 아니고, 나의 가난이 아니고, 내 가진 것이 아니고, 내 육체 속이 아니고, 예수님 안입니다. 내 육신으로나 이 세상으로 본다면 환난이나 극한 가난 가운데 있겠지요.
그러나 이 마게도냐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 섰을 때 그들은 부요한 마음, 사랑이 끓어오르는 마음, 섬기고 싶어하는 마음, 이런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를 정성껏 섬긴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요?
이것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요?
나의 주님께 철저하게 속하여 나의 주님 안에 믿음을 두고, 나 자신에게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값진 주님 안에 근거한 거이 이처럼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하고 가진 것이 넉넉하고 주어진 환경이 평화스럽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극상품 포도나무가 가득 심겨진 아주 좋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고, 건강한 우리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열매가 많은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나의 주님을 오늘의 나의 근거 삼는 가운데서는 이 놀라운 의욕과 이 놀라운 사랑과 이 놀라운 섬김을 할 수 있는 은혜와 영광이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해 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나의 근거로 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일까요?
우리는 고린도후서 9장에서 이 말씀의 의미를 좀 더 되씹어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인색함으로 하는 것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부요한 사람도 억지로 할 수 있고 인색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가진 것이 없다는 것 아닙니다. 가진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육의 탐심은 있지만 진정한 사랑이 없는 옛 사람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속한 이는 참으로 즐겨 섬길 수 있고, 즐겨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나의 주님으로부터 임하여 올 수 있는 줄 압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이 얼마나 값진 은혜인가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올 수 있는 이 마음!
인색함이나 억지는 우리 옛사람, 우리가 태어난 사람에게 불과하겠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참으로 이 사랑 때문에 녹는 소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주님의 밝음 속에서 기뻐하면서 녹는 소금처럼 이 놀라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거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 압니다. 어떤 여건 속에서도 이렇게 살 수 있을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