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땅끝(정오 묵상 말씀 중)
2008년 7월22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향해 나아가는 걸음은 정말 어려운 걸음이었습니다.
쉽게 말헤서 죽음의 땅을 걸어간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다윗의 광야가 죽음의 계곡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광야의 어려움을 허락하신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를 걷는 것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러한 길에서 오직 나의 하나님 신뢰하고 내 하나님 바라보는 가운데서
그들은 주님으로 인해 살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힘입어 살아가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친근한 관계를 마음 속에 유지해 갈 수 있었음.
예레미야2장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표현해 주신 말씀으로 나의 주님을 이처럼 친근히 하고 사는 이 관계를
'씨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벗 됨과 결혼 때의 사랑 처럼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주님의 섭리였음.
이러한 길을 통해 하나님의 귀중한 섭리를 익혀야 할 것 같음.
중요한 것은 오직 벗 되신 주님을 의지하므로 어둠의 땅, 사망의 땅, 철저한 광야를
그들은 생기있는 사람으로 지나갈 수 있었음
나의 주님 신뢰하므로 살수 있다는 것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으로 광야에 쓰러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씀해 주심.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그들은 주님 한 분께 대하여 매어 달리는 마음으로 나아갔듯이
그들이 가난복지에 거한다 할지라도, 이제 평화롭고 부요하고 주어진 환경은 정착되어 있으며
보이는 불기둥과 구름기둥 없으며, 맛나 먹지 아니하며, 움직이는 삶이 아니라 정착된 삶을 산다할지라도
그들이 광야에서 배운 이 값진 교훈만은 잊어서는 결코 안되는 겁니다.
만약에 그들이 이제 만약에 나의 주님 없이는 오늘도 살 수 없다는 그러한 마음보다
하나님없이도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넉넉하다고 할만큼 살아갈 수 있다함에 대한 비참함은 참으로 그러함
중요한 것은 가난복지에 양식있어도 영혼의 양식은 오직 주님 뿐!
가난복지에서 마실 물 넉넉하다 할지라도 영혼의 생수는 주님 뿐!
여러분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가난복지에서 아말렉과의 전투는 없어보여도,나의 주님을 나의 힘으로 모시지 아니한다면
나 육체가 아말렉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의 인격을 짓밟아 버릴 것이며,
가난복지에는 저 광야의 불뱀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어둠의 영은 얼마든지 영혼들을 짓 밟고 어둠의 길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함.
참된 영혼으로 살아있는 참된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영혼은, 광야에서 배운 관계 속에서만 설 수 있으며
관계속에서만 나아갈 수 있다는 하나님 앞에 참된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영혼은,
이 빈들에서 나의 주님과의 관계속에서만 설 수 있으며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는 비결만큼은
가난복지에서와 똑같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아니 될 것임.
만약에 잊어 버린다면 우리는 철저하게 무너지고야 말 줄 압니다.
우리의 인격이 살아 계신 주님 향해서 이와같은 마음으로 서는 자 만이 참으로 복된 자 인 것입니다.
다윗이 빈들에서 사울 왕의 핍박 속에서 광야에 숨어있을 때, 주님을 피난처 삼았으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의 주님과의 함께하는 은혜속에 설수 있고, 평안할수 있고, 이길 수 있었으며,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가 안정된 왕의 위치에서도 주님과의 이와같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는 무너지고야 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삶을 많이 살아가는지요???
주님만이 나의 빛이 되며, 생명이 되며, 나의 영혼의 양식이 된다는 올바른 교훈을 놓아버리고 만다면 우리는
가진 것 때문에 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나의 가진 것이 양식이 되며, 힘이 되며, 양식이 되며,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나요?
아닙니다.
전적 우리의 전투나 하나님보시기에 올바른 삶을 사는데
참된 빛과 참된 힘과 참된 양식과 참된 생명수와 참된 모든 것은 오직 주님 뿐이신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영혼이 주님 향해서 이러한 맘으로 서 가므로 오늘도 놀라운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 아모스 선지자가 평범한 농부임에도 불구하고, 양치며 누에 기르는 그러한 사람 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어진 삶의 여건과 환경의 조그만 것에 기대를 두지 아니하고, 나의 주님 안에 자리잡고
주님과 사귐하며, 사람이 때를 따라 양식을 먹으며 때를 따라 물을 마시듯이
주어진 양식도 있고, 주어진 물 있지만, 그것을 영혼의 양식과 영혼의 물로 생각지 아니하고, 나의 주님께 속한자로
주님만을 저 아모스8장 말씀 처럼 나의 영혼의 양식으로, 영혼의 음료로 순간 순간 주님을 친근히 하며 살아갈 때
그는 어둠과 죄악을 이길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참으로 전투하며 영광 돌리는 생활처럼
내 하나님 뜻 가운데서 남조 유다사람으로 북조 이스라엘로 나아갈 수 있는, 힘 있는 주님의 사람으로 설 수 있었음.
왜 오늘 하나님의 사람이 그렇게 기운이 없으며 어둠과 죄악을 이기지 못하며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지 못할까요?
그들은 주어진 여건을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가진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빈들로 나와서 나의 주님만을 나의 믿음삼고 나의 주님만을 사랑삼고
내 주님만을 나의 동행하는 길로 삼는다면, 저 빈들의 세례 요한이 비록 메뚜기와 석청 먹고 약대 털옷 입고
산다해도, 영혼은 강건하며 내 하나님의 음성으로 생기있게 움직이며 살 만큼 활기있었던 것처럼
세례요한처럼 약대 털옷 입지 않고, 메뚜기 먹지않고, 석청 먹지 않고, 광야에 거하지 않는다 해도
평범한 삶에 거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영혼이 갈보리십자가에서 벗어나서 나 육체와 이 세상에 앉지 아니하고
나의 주님 안에 정함있게 자리잡은 자로, 내 주님만을 나의 힘으로, 나의 사랑, 나의 주님으로, 나의 모든것으로 친근히 앙망하며
오늘도 내 주님만 먹고 마시며 내 주님과 친근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빈들의 사람, 겉으로는 아닌 것 같아보여도 하나님께서 빈들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심.
세례요한이 하나님 앞에 값지고 의미있는 삶을 살았듯이,주어진 여건과 환경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님과의 친근한 사귐을 갖고 있으며, 생기있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됨.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걸어갈 때는 날마다 땅 끝이었음.
하나님의 도움없이 오늘도 설 수 없으며,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없이는 목말라 타버리고 말아버리며,
내 하나님 함께 하지 않으면 오늘도 아말렉에 이길수 없으며
오늘 우리가 당하는 불뱀들 가운데서 안전하게 길 가기가 어려웠다고 한다면,,
오늘도 여러분과 저의 영혼이 광야가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은 더 거친광야 임을 알아가면서
시편91편의 거친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갔던 광야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주어진 환경과 문화가 있는 그러한 광야임을 인식하며
오늘도 지존자의 은밀한 거처인 나의 주님 안에 자리잡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의 주님안에 속한 겸허한 마음으로, 나의 주님사랑하며 함께 걸어간다면
땅끝에 선 자로서 나의 주님과 함께 걷는 영광과 은혜와 사랑이 있는 놀라운 삶을
우리 각자 한분 한분들이 오늘의 주어진 환경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줄 압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그 넉넉한 여건과 환경속에 세례요한 못지 않는 영적 힘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러한 것을 빈들처럼 여겨 버리고, 내 주님만을 친근히 하여
나의 주님과의 사귐속에 서고자 하는 자는, 오늘도 주님의 붙드시는 은혜가운데 넉넉하게 설 수 있음을 기억해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정오시간에 주님을 친근히 가까이 하고자 하는 여러분이 나의
주님의 은혜가운데 설 수 있는 놀라운 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강영기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