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갈라디아서 5장 22절부터 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가 아름다운 줄 압니다. 그것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 세상 어떤 나라도 이런 것을 금지할 법은 없다라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인격은 천국에서도 기쁨으로 영접 받을 수 있는 자임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생각해 볼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흉내낸다고 될 수 있나요? 아니면 여러분과 제가 애쓴다고 될 수 있나요? 그것은 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열매는 기억합니다만, 그러한 열매가 자기 생활 속에 없음을 알고 탄식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주의 깊게 생각하면 열매란 것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열매는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준비만 한다면 이러한 결과는 우리에게도 틀림없이 맺혀질 수 있는 줄 압니다. 멀리 나아가서 살필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조금만 살펴봐도 우리는 그 중요한 내용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여러분과 저의 영혼이 갈라디아서 5장 앞부분에서 들려주신 말씀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나무가 없는 열매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제가 함께 우리가 자연적으로 태어난 우리 옛사람을 가지고 이런 열매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가시나무에서 포도 열매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흉측한 찔레에서 먹음직한 무화과 열매를 기대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참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나무도 생각하지 아니한 채 이러한 열매만을 추구하면서 때로는 ‘성령님이여!’라고 부르짖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나무에 그 열매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도 뿌리가 있고 성장이 있고 난 이후에 열매가 있듯이 그렇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앞부분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신답니다. 이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울만한 그러한 자유입니다. 또한 나머지 것에 묶어지지 않아도 능히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아 줄만한 그러한 자이기에 이 진정한 자유를 주시고자 하는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자신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당신은 모든 세상의 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해도 괜찮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에 관해서는 나머지 모든 얽매였던 그러한 멍에에서 자유를 주어도 괜찮을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의 영혼이 그리스도 자신께 속하여 그리스도 자신을 나의 참 포도나무 삼을 때 이 놀라운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 진정한 자유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만약에 사람이 변화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제도나 법적인 것을 제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모릅니다. 또 한편 그 사람에게 그러한 법이 필요 없을 만큼 자유롭고 아름다운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멍에를 씌우는 것도 또한 어리석은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무덤에서 나온 나사로에게 죽음의 옷을 입혀 놓는 것은 가당치 않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하여서 나의 주님의 가지 된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머지 모든 멍에에서 자유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사로잡힌 예수님의 가지로서 연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나무에 속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나의 관계가 끊어짐이 없고 주님의 끊임없는 은혜 속에 사는 우리여야 합니다. 만약 여기에서 벗어나서 자신에게 돌아온다면 그리스도와는 관계가 끊어질 뿐만 아니라 주님의 그 놀라운 은혜에서 벗어난 자가 될 때에 부끄러운 사람으로 추락하게 될 줄 압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부터 21절에 나오는 그런 옛사람에게 당신은 세상의 어떤 제도나 세상의 법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철저하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무에 관한 교훈임을 기억해 볼 수 있습니다. 온 천지에 참된 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는 부활하신 예수님 그 나무뿐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 말씀처럼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나의 주님께 속한, 오늘도 생명의 나무이신 부활하신 주님께 연합된 그러한 위치에 설 때,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함께 이 열매를 기대해볼 수 있는 놀라운 근거 위에 서 있음을 기대해 주시기 원합니다.
두 번째는 그 나무에서 그 진액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함께 그 나무에 매여 있는 체하면서 나의 생각이나 나의 원함만 좇는다면 이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 18절 말씀은 우리에게 바로 그 나무의 진액의 원함을 좇아가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그 나무의 진액이 바로 예수님의 영이요 성령님임을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곳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육체의 욕심을 좇아가기를 원치 않나요? 여러분이 육체의 욕심을 스스로 제어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 속하여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생명의 영의 원함을 좇아갈 때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비밀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지혜로움입니다. 나의 육체와는 평생토록 싸워도, 그것이 금식이니 아니면 고행이니 어떠한 방법과 훈련을 통해서 싸운다할지라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 확실한 방법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참된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께 연합하고, 나의 마음이 그분께서 주시는 생명의 영의 원함을 온 마음으로 기대하는 가운데서 주님이 주시는 예수님의 영 곧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성령님의 소욕을 좇아간다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육체의 욕심을 좇아서 아름다운 삶을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우리 가운데 예수님께 속하여 예수님의 생명을 좇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진액을 좇는 것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8절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의 나무이신 그 진액으로부터 인도함을 받아 살아 갈 때 율법의 멍에 속에 있지 아니함을 일깨워 주십니다.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신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아름다운 생명을 좇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우신 분의 그 인격을 좇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통하여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나무 그 진액을 좇아갈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가 우리 인격화 되는 것을 알게 될 줄 압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우리가 이 길에서 주목할 일이 하나 더 있다면 절대 이 길 밖에서 다른 영광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 말씀처럼 우리가 성령을 좇아 살고 성령을 좇아 행한다면 다른 영광은 구하지 말라는 뜻으로 헛된 영광은 구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는 것이 필요할 줄 압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이 길속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이 길속에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역사를 할 수 있음을 기대해 주시기 원합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가더라도 나의 부활하신 예수님께 속한 이 믿음과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그 생명의 진액을 좇아 순종하고 섬기며 살고자 할 때, 여러분은 비로소 우리 인격의 아름다움을 들어 말하기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될 줄 알게 되며, 또 한편 우리가 이 길을 좇아 섬겨갈 때 ‘내가 이러 이러한 역사를 했습니다만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마음으로부터 우리가 고백하게 될 줄 압니다.
여러분,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이 놀라운 은혜! 그 속에 속하여서 오늘도 여러분의 인격 속에 성령의 열매가 끊임없이 가득하기를 기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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