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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발도르프유아교육(강연회)

작은둥지 2007. 9. 28. 14:32
 

발도르프유아교육 (서남재단 초청강연회)   

                                                                         프레야야프케


이 세상 여러 곳에서는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조건(날씨 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조건에 대해 자신의 권리나 존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국민의 집단이 있다. 이들은 신뢰감을 가지고 다가오는데 이 지상에서 수행할 과제를 다 하기 위해 온 집단이 있는데 바로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는 나름대로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다. 북쪽에서 태어난 어떤 아이들은 태양빛을 볼 수 없고, 남쪽의 아이는 너무 많은 태양빛을 받고, 어떤 아이는 섬에서(물이 많은), 어떤 아이는 사막의 황무지, 물 한 방울이 대단히 귀한 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전혀 다른 조건하에서 자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생의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도구는 바로 물리적 신체를 의미하며 이 물리적 신체내에는 아이의 개별성이 자라고 있습니다.

만일 한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의 신체 구석구석을 살핍니다. 그리고 정상이면 기뻐합니다. 한 아이가 태어날 때 이 모두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움직임도 혼란스러우며, 모든 감각적 인상에 스스로 던져놓고 있으며, 모두가 열려있는 상태이고, 전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어떤 흥미나, 표현, 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것은 직접적으로 아이의 내부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린이는 자신의 삶을 살아나갈 신체를 형성해 나가야할 어떤 환경이든 과제를 가지고 있다.

신체 내부의 개별성은 의지력,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신체 내부의 힘들은 신체를 형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생후2,3년 동안에 아이의 동작을 통해서 신체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년 만에 서서, 걸을 수 있다는데 대단한 기쁨을 느낍니다. 아이는 온전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절대 좌절하지 않고 일어납니다. 생후 1년 후 아이는 서게 됩니다. 우리는 그 아이가 완전하게 서있다고 하지는 않으며, 손으로 무엇을 완전하게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취학 전까지의 발달과정을 보게 되면 규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는 6~7세경에 이를 갈게 되지요. 부모에게서 선물 받은 젖니를 새로운 이로 형성되면서 엄마로부터 선물 받은 이는 빠져나가지요.

모든 어린이는 11~15세경에 사춘기를 경험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아이의 6~7세경을 잘 살펴보면 머리로부터 시작이 되서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는 (2세반에서 3세)점차 머리를 곧게 세웁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아이의 내부가 온전하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내부기관(간, 허파, 심장)이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뇌를 봅시다. 아이의 뇌는 태어나면서 이곳저곳에 신경 조직만 있는데 자라면서 신경조직이 연결되어 나가고 있고, 점점 세분화, 다양화로 발달해 나갑니다. 바로  이 개별성이 생명력을 가지고 발달단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뇌 뿐만 아니라 감각기관(듣고, 보고 등)을 건강하게 발달하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자녀가 세분화된 음을 들을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기를 원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외부의 큰 소리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청각의 발달을 위해서 인간의 소리 - 엄마, 아빠의 노랫소리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기계에서 나는 소리(텔레비전, 오디오 등)는 더 이상 인간적이지 못합니다. 어린이들이 머무는 공간에는 기계적인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2세반에서 3세의 어린이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배우는 모든 것은 모방을 통해 배웁니다. 아이는 엄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따라하고, 만지고, 합니다. 엄마가 빗자루 질을 한다면 아이도 따라하지요. 엄마가 비질을 멈추고 전화를 받는 다면 그사이에 아니는 엄마가 모아놓은 쓰레기를 비질을 하면서 흩어놓지요. 이때 아이의 행위는 아무런 목적이 없습니다. 단지 움직임에 대한 즐거운 모방입니다. 엄마가 물통을 놓고 바닥을 닦는다면, 어떻게 꺼내고 넣는지를 보고 따라하지요. 그러면 주위는 온통 물바다가 되겠지요. 엄마는 더 많이 치워야하니 화가 나겠지요. 우리는 엄마가 그 일을 하고 있을 때  아니는 무엇을 할까요?

엄마는 2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일상의 일을 해결해 나가고 있고 동시에 아이에게 삶을 배우게끔 하고 있습니다. 이때 어린이의 행동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집니다.


4~5세 는 아주 중요한 새로운 시기인데, 3세부터 특별한 능력이 생기게 되는데, 예를 들어 4세 된 남자아이가 유치원에 왔습니다. 아이는 바지에서 실뭉치를 꺼냈습니다. 선생님에게 보여주며, 실뭉치 끝을 잡으니 스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실뭉치가 따라오자 “선생님” 나 강아지 있어요. 라고 했습니다. 누가 실뭉치로 강아지를 만들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어린이다운 환타지 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솜뭉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그것을 실뭉치 속에 꾹 집어넣으며, 우리 강아지가 밥을 먹었어요. 라고 했습니다. 환타지의 놀라운 능력이지요.


예를 들어 4세반의 소녀가 나무로 된 얇은 판으로 식탁을 차리고 그 판을 마주하고  그 사이에는 천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빵을 굽는 것이었어요. 빵이 잘 익었나를 확인합니다. 우리는 아이의 이런 모습을 통해 아직 얼마나 좋은 환타지를 가지고 있나 에 대해 기뻐해야 하며, 아이는 그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보세요. 멋진 와플 기계를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것은 첫 번째 발달단계인 (0~2세반,3세)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단계의 어린이는 나무토막으로 빵을 구웠다고 하면 진짜로 먹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시기, 즉 환타지 시기는 먹는 시늉을 하지요. 이러한 환타지가 발달될 수 있도록 지지 및 기회제공이 필요합니다. 최선의 방법은 어린이에게 가장 단순한 놀잇감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이것들은 숲 속에서 얻을 수 있고, 나무토막, 색다른 천, 솜 등등- 나머지 작업은 어린이 스스로의 환타지가 하게 됩니다. 환타지는 어린이가 보는 모든 것을 다르게 하려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어.

똑같은 것인데 어떤 아이는 이것으로 생일상을 차립니다.

어떤 아이는 실로 묶어 기차놀이를 합니다.

어린이는 모든 것으로 될 수 있으며,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다르게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닌 시기입니다.

만약 이 시기에 아이에게 완전한 형태의 물건을 준다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아이의 환타지가 할 일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어른은 아이의 환타지를 발달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첫 번째 예로

천을 가지고 양쪽을 아주 조심스럽게 매듭을 짓습니다. 2개의 매듭을 다시 합칩니다. 무엇이 만들어 졌을까요?

토끼, 달팽이, 등등……. 만들어진 달팽이로 시를 읊으면서 아이가 다가오도록 합니다.

어머니와 자녀……. 다른 어린이도 관심 있게 다가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과정을 경험하고자 하는 것이지, 만들어진 결과를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환타지는 바로 과정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환타지를 가지고 있다면 무엇인지 알아차릴 것입니다.


두 번째 예)

작은 솜뭉치를 손수건으로 덮어서 묶습니다. 그리고 양쪽 끝을 매듭을 짓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 인형 안에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색연필로 얼굴부분에 점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눈과 입입니다. 바로 그 어린이가 만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집니다. 인간은 눈을 통해서 만납니다. 이것은 눈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점을 찍은 것입니다. 만약 아이를 재우려고 인형을 눕히면 만약 산 인형이라면 눈을 감았다 떴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점은 점이지만 우는 눈, 웃는 눈일 수 있으며 아이가 필요한 모든 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엄마는 아이를 감싸 안 듯이 인형을 감싸 안습니다.

어린이에게 동화를 들려줄 때에는 자기 인형 아기를 안고 와서 동화를 듣게 합니다.

4살 난 남자아기가 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에

오! 우리 아기가 벌써 잠이 들었네 하면서 선생님 이제 이야기 해주셔도 돼요.

아이가 자기 물건에 대해 긴밀감을 갖는 것은 바로 이 환타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눈, 코, 입을 다 가진 돈으로 산 인형은 이런 환타지가 생길 수 없습니다. 특히 요즘은 희한한 기능을 가진 인형이 있는데

팔을 쓰다듬으면 우는 인형이 있습니다. 얼마나 웃긴 일입니까? 아이들은 몇 번 해보고 나면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루한 놀잇감으로 변합니다.

환타지를 가지고 할 긴밀감을 잘라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보는 놀이로 관찰만 할 뿐입니다. 이 놀잇감은 아이들로부터 떨어져서 보는 것일 뿐입니다.


5세에는 또 다른 발달을 가지게 되는데요.

이 시기가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상황이 됩니다.

건강한 어린이라면 이 시기에 너무 심심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만일 교육자가 그 상황을 안다면

어린이이 환타지를 보호해 주어야할 보호기가 필요합니다. 이 기간은 아이들마다 매우 달라 3일 내지는 6개월 동안 지속될 수 있는 다양성이 있습니다.

이 시기의 어린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이 시기는 실제의 작업을 통해서 도와줄 수 있다.

칼로 부엌작업을 한다던지, 마늘을 깐다든지 등등

색다른 능력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5~7세 정도가 되면 새로운 능력이 형성되는데

예) 세 명의 어린이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로만 상의를 한다.

우리 신발가게 놀이를 하자. 그러자 한 아이가 아니야, 우리 병원놀이 하자.  배를 만들면 어떨까? 그러나 대화를 나누면서 무엇인가 일치시켜 나간다.


공통적으로 동시에  세 명이 내면적인 그림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주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아까 4세 어린이가 실을 가지고 “강아지”다 라고 했을 때

강아지 놀이를 먼저 의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 번째 시기의 아이들은  내면적인 그림을 가지게 됩니다. 선생님이 이야기 하면 내 앞에 그림이 다 그려지고 눈을 감고 있어도 선생님이 보인다고 합니다. 내면적으로 그림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의식적으로 기억을 해서 끌어내는 가능성을 가졌다.

이 시기는 남자와 여자아이의 놀이가 달라진다.

여자아이는 아이 키우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어린아이들(인형)을 모아서 논다.

남자아이에게는 과학기술이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아이 스스로가 내면적인 행위를 하게 되는데 한 아이가 불자동차 놀이를 하고 있다. 옷과 장비 등이 전혀 없다. 어린이들은 환타지(중간시기에 잘 발달된)를 가지고 스스로 무엇을 만드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듯 간단하다. 어른은 아이의 하고자하는 의지에 몰입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돈으로 사주는 과학적인 장난감, 즉 조정을 하는 자동차들에서는 이것에는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추를 누르는 일이다. 이는 아이가 관중일 뿐이다. 이런 장난감에는 놀잇감으로 될 수 있는 것을 원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오늘날에는 많은 어린이가 컴퓨터 게임기를 갖고 놀고 있다. 어린이는 내면적인 그림을 가지고 놀기를 원하는데 그 힘을 가장 많이 소모시키는 장본인이 바로 컴퓨터 게임입니다. 어린이는 내면적 그림을 가지고 놀기를 원하는데 컴퓨터 게임기는 반대로 어린이 내부로 모아집니다. 어린이는 관중일 뿐이고 내면적 그림을 그리는데 큰 해를 입게 됩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이갈이를 하게 됩니다. 더 이상 빠지지 않는 이 이가 솟아나면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이 시기까지 자연스럽게 삶을 살았다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생활은 아이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도록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연과 산을 찾아가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어른들이 삶의 과정을 어린이들을 위해 재현해야 합니다. 또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모, 유아교사가 매일 일상적인 생활을 해나간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바구니를 짜고 있다면 아이들은 시작으로부터 끝이나는 과정을 알게 됩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어린이는 옆에서 보고 있으면서, 아 인간은 일을 하는 존재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집안일, 놀이들은 어린이들이 있는 공간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도와주기를 원하는데 항상 그것이 가능해야 합니다.

내가 가르쳐 줄께!에 유의해야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재료의 남는 부분을 가지고 놀게 제공하는 일입니다.

아이들의 옆에 또 다른 바구니를 어린이들을 위해서 놓아 둡니다.

내가 어떤 작업을 하면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이들의 바구니에 넣어 둡니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논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발달단계를 거쳐나갈 수 있도록 어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훌륭한 재료의 제공은 화학적,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섬세한 감각으로 진실된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어린이는 성인들이 항상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놀잇감도 스스로 만든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교사가 어린이에게 필요한 놀잇감을 스스로 만들어 주고, 실제적인 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여야한다.

일련의 계절의 흐름은 교육기관에 끌어들입니다.

텔레비전, 비디오는 아이와 부모를 단절시킵니다. 부모자신이 진심으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책을 읽어주는 것이 훨씬 좋겠지요. 일을 하면서 예를 들어 요리를 한다면 놀이를 함께 한ㄷ자면 어른으로서 가져야할 과제는 즉 일을 하면서 동시에 어린이를 가르치는 과제인데요. 항상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는데,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멋진 하루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바느질을 하고 있었는데요. 6세의 어린이가 나에게 와서 우리 병원을 만들었는데 아픈 사람이 아무도 없고 안와요. 내가 환자역할을 해줘야 하나 생각을 해 봅니다. 결론은 이 발좀 봐. 다쳐서 치료를 해야겠네. 연고를 발라야 되겠어. 아이들에게 의료기구는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항상 천이 있습니다. 천을 좁게 접은 다음 둘둘 말아서 붕대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다리에 붕대를 감고, 나는 바느질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봅니다.

소꿉놀이 씨앗을 가지고 와 그것은 약이 됩니다. 주변에서 그 일을 다 본 아이들은 모두 환자가 됩니다. 환자 대기실이 환자로 꽉 찼습니다.

예를 들어  여섯살 아이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레스토랑을 만들었고 나에게 메뉴판을 들고서는 음식을 주문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스파게티에 야채스프 등을 주문했습니다. 아이는 음식이름을 모르고 있다가 주문한 것이 레스토랑 음식임을 알았습니다. 조금 후 아이는 그릇을 가지고 와서 상을 차렸습니다. 돌아가면서 고마운 듯 밤 몇 톨을 주고 가면서 그것으로 아따 돈 내요 라고 하였습니다.

유아기관에 남자가 없으면 여자아이가 남자역할을 합니다.

의자를 고친다거나 도구를 가지고 와서 작업대에서 준비를 합니다. 아빠들이 유아기관에 초대되었을 때 아빠는 어린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많은 작업을 하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빠가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한다면 아이는 모방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아빠에게서 받은 그림이, 빈둥거리는 아빠, 텔레비전만 보는 아빠라면 아이는 더 이상 모방할 것이 없게 되지요.

출처 : 아이라움
글쓴이 : 고운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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