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두아디라교회
(비잔틴 시대에 건축된 두아디라 교회의 모습지금은 일부건물과 기둥만 남았다)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교회 유적은 아무리쳐다보아도 느낌이 없는 낯선 기호엿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초대교회도 아마 그랬으니라. 그러나그곳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예수를 믿으면 기독교인이 될 수잇다. ”고 말한 바울의 숨결이 닿앗던 곳임을 알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성지 순례는 역사의 수례바퀴를 되돌리는 의미있는 시간이다. 터키 디킬라항은 떠난 유람선은 11시간의 항해끝에 쿠사다시 항에 닻을 내렸다.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65km쯤 떨어진 고대 도시로 버가모와 사데 사이에 자리 잡고있다. 옛날 국제적인 시장이 형성됐던 두아디라(아키사르)에는 현재 3개의 김나지움(체력 단련장 및 전신수양관) 비잔틴 시대의 교회건물터가 관광객을 반기고 있다. AD5-6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두아디라 교회는 반훤형의 재단 부분과 4m높이의 벽, 서쪽벽에 인접한 네모진 창고만 남아있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교회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곳에 누가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 했을까?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성경(행19:10) 에 따르면 바울이나 바울을 따르던 신자가 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두아디라 사람으로 처음 예수를 믿는 사람은 두아디라성의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다. 행16:13-15절에 사도 바울과 두아디라출신으로 빌립보에서 무역업에 종사했던 루디아의 만남이 기록돼 있다. 그녀는 빌립보까지 가서 자주 옷감 장살를 했던 대상 이었다.그리고 자신의 집을 선교 모임 장소로 제공할 정도로 헌신적이 었다. 빌립보에는 루디아를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져 있다. 두아디라는 염색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트로이 전쟁사를 섰던 서머나 출신 시인 호메로스는 “두아디라 에서는 유명한 자주색 천이 생산됐다”는 기록을 남겼다. 두아디라에는 염색뿐아니라 직조 피혁 도기 빵 제조업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장사하려면 동업조합에 가입, 절기마다 제사에 참여해야 했다. 뿐만아니라 제사음식을 먹고 제사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면 시전의 사제들과 음행을 했다. “이세벨을 용납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었다” (계2:20) 는 성경 말씀은 바로 동업조합에 가입한자들이 아폴로 신전에서 행했던 음란한 제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에 많은 칭찬을 받았다.예베소 교회가 갖지못한 서로 섬기는 사람이 있었다. 내적 결속력도 갈했다. 그러나 올바른 말씀의 가르침이 사라지자 교회는 세상적인 친목 단체로 변해 버렸다. 성도들이 깨닫지 못한 사이에 삶과 신앙이 분리 되었다. 교회에 많은 물질을 바치고 그 영향력으로 교회 일을 좌지우지 했던 이세벨이 교인들을 선동해 세상적인 관습과 문화를 따르도록 했다. 성도들은 생계를 위해 동업조합에 가입해 우상을 섬겼다. 현대에도 이런 갈등은 존재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반법을 가리지 않은 삶, 사회적 성공과출세를 위해 세속화된 삶이 바로 두아디라교회가 범했던실수와 별반 다르지 않을것이다.
(빌립보의 루디아 기념교회)